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기술비판이론 재고(제라드 딜렌티, 닐 해리스, 2021)

번역노트

by actant 2022. 3. 16. 15:06

본문

Delanty, G., & Harris, N. (2021). Critical theory and the question of technology: The Frankfurt School revisited. Thesis Eleven, 166(1), 88-108. *발췌 번역 정리

 

현대비판이론은 비판이론 1세대와는 달리 기술을 무시해왔다. 

 

비판이론의 핵심 아이디어가 오늘날 기술의 본질을 평가하기 위한 기초를 제공한다. 이를 위해 비판이론의 핵심 개념  일부를 재구성함으로써 기존 접근의 한계를 확인하고 보다 강력한 기술 이론에 도달할  있다.

 

제라드 딜렌티와  해리스(2021) 핀버그의 이론이 비판이론의 많은 단점을 시정하면서도 그들이 고심하는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은 제공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기술 발전과 진보의 연관성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기술과 자본주의의 밀접한 연관성을보았다. 게다가 이들의 저작에는 기술시대 이전 과거에 대한 향수가 없다. 이들은 후기 맑스주의 이론과는달리, 기술을 단순히 자본주의에 환원할  있는 것으로 보지 않고 고유의 역학을 갖는 것으로 보았다. 비록 베버가 '테크닉' 도구합리성으로 축소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쇠우리' 유비에서 보여주는 넓은 의미의 합리화이론은 기술 비판의 사회학적 토대를 제공했다.  자본주의는 기술적으로 추동된 것임과 동시에 도구합리성의 표현으로   있는 것이다. 도구합리성으로서의 기술 개념은 맑스주의적 관점과 동시에 문화적 차원을 포착할 수 있는 개념이었다.

 

기술은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형성되고 자본주의에 의해 추진된다는 것.

 

1세대 비판이론가들의 고심했던 기본적인 문제는 기술의 개념에서 수단과 목적의 분리였다. 아렌트와 하이데거가 기술에서 목적을 넘어서는 수단의 승리를 봤던 것과는 달리, 이들은 인간성이 기술의 통제 하에 존재한다는 도구적 모델에 대한 아렌트의 설명처럼 기술이 목적지향적이었던 인류 역사 초기로 회귀하는 것을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구주의 기술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기술은 목표와의 직접적인 관계를 상실한다. 비판이론의 목적은 근대 기술을 한탄하기보다는 목적을 다시 주장하는 것에 있다.

 

기술에 대한 마르쿠제의 비판: 기술은 그 자체로 사회적 통제 수단이자 이데올로기이다. 기술합리성은 그것이 만연해지면 대안적 사회나 사고방식의 구상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념이다. 기술과 자본주의의 결합에도 불구하고 비판적 합리성이 우세할 수 있지만, 기술합리성에 저항하고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관료제이다. 그는 '반산업혁명'과 같은 반기술정치에 명백히 반대한다. 그의 입장은 기술이 인간화될 수 있고 기술관료제에 맞서 민주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탈자본주의 사회가 실현될 수 있는 방법은 몰랐다. 그는 기술이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걔와 생산체계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기계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립적일 수 있지만, 항상 사회적 맥락에 위치에 있다. 기술은 삶의 질 향상 등 물질적 진보를 가능케 하면서도 개인이 자율적으로 되는 것을 막고 사람들이 그들의 상품으로서 자신을 보게 되기 때문에 새로운 자유를 만들어낸다. 최종 분석에서 기술은 물화로 이어지고 사회 통제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욕구에 고정될 수 있게 한다. 그의 타켓은 기술이 아니라, 기술합리성, 즉 기술지배를 위한 도구적 사용에 있다. 여기에는 모더니티의 궁극적 표현으로서 기술숭배가 포함된다. 기술숭배는 사회에 대한 긍정적 관점을 기르고, 무비판적인 수용의 이데올로기는 숨긴다.

 

테크놀로지의 문화적 개념과 도구적 개념의 분리는 독일에서 이루어졌다. 보다 오래되고 문화적인 Technologia 개념이 과학적 개념을 중심으로 20세기 독일의 Technik (instrumentalism/technique) 개념으로 대체/재발명되면서 공예(craft)와 예술(art) 개념을 포괄하는 그리스 테크네 개념과의 연관성이 상실되었다. 테크놀로지라는 용어는 1940년대까지 널리 쓰이지 않다가 테크닉과 거의 같은 의미로 재등장했다. 그러나 테크놀로지 개념의 창조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이 완전히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테크놀로지의 기초인 과학은 발명의 창조력을 필요로하고 따라서 부분적으로 문화적이라는 점에서 테크닉에 포함되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하이데거가 테크놀로지의 '본질'이라고 부르는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보다 넓고 포괄적인 테크놀로지 개념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이 새로운 테크놀로지 개념은 테크놀로지의 도구적 차원과 문화적 차원 모두를 포착했지만, 물질적 차원을 부각시키는 방식이었다. 이것이 마르쿠제의 테크놀로지 이론 뒤에 놓여있는 기술 개념이다.

 

기술비판이론의 주요 한계는 테크놀로지가 테크닉, 즉 도구적 개념으로 작동함으로써 기술의 사회적 존재론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테크놀로지는 자동화나 비인간화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다시 말해 기술 을 도구합리성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현대의 사회적 삶에서 기술의 구성적 역할을 이해하기에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사회적 삶은 기술적 프로세스로 직조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스마트폰,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 줌으로 소통한다. 

 

핀버그와 스티글레르는 프랑크푸르트 학파보다 반결정론적.

 

핀버그는 비판이론과 STS의 구성주의를 조화시키려고 시도. STS 접근법이 테크놀로지를 지배와 물화의 힘으로 보는 비판이론을 교정.

그러나 딜렌티와 해리스는 이것이 쉽지 않다고 본다.

 

핀버그의 주요 주장은 테크놀로지가 사회적 맥락 안에 배태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수센(Susen, 2019)가 지적하듯이 독창적인 통찰은 아니다. ANT의 경향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구별을 넘어서기 위해 포스트휴머니즘으로 향하는 것이다. 이것의 장점이 무엇이든 간에, STS의 포스트휴머니즘과 비판이론의 본질적 휴머니즘을 조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이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핀버그와의 작은 의견차이다.

 

기술은 이미 문화적이다.

 

'테크노시스템'은 시장, 행정, 법률, 도덕체계를 포함하며 삶의 양식에 맥락화되어 있어서 민주적 개입이 발생가능하다. 예컨대 인터넷은 통일된 실체가 아닌 인터넷은 매개 과정을 통해, 그리고 의식발생을 가능케함으로써 자각과 행동을 이끄는 정치참여를 재형성한다.

 

테크놀로지의 본질은 사회세계에 대한 이해 안에 있다.

 

내재적 초월성과 밀접한 사회적 합리성에 대한 비판이론의 초점: 비판이론은 사회세계 내의 초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비판적인 이론적 방법의 핵심적 특징은 헤겔리안적인 이성 이해이다. 이 생각은 사회적 과정과 제도가 모두 합리성의 예시들이고 합리성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합리성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칸트 학파의 '이성의 규제적 사상' 아래에서의 헤겔주의 재작업으로 돌아가면, 비판 이론은 사회 전체성이 지배적인 형태의 합리성의 발현이라고 본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성'은 사회적 주체의 인지 능력일 뿐만 아니라 시장, 민주주의, 문화 형태와 같은 사회 기관의 논리와 구조에서도 나타난다. 자본주의 시장을 하나의 이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시장 교환 시스템에 의해 영구화되고 발현되는 특정한 형태의 사고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설명은 엄격한 결정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회적 주체는 지배적인 사회적 형식의 합리성 안에서 작동하고 또 도전한다. 사회적 과정에 배태된 모순이 역사적 과정에 의해 드러남으로써 주체는 대안적이고 비포섭적 합리성을 추구하며 발생적 힘에 도전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초기 비판이론가들이 제기한 부정성보다 테크놀로지의 양가적 힘을 더 잘 보여준다.

현대 기술비판이론의 중심과제는 현재 테크놀로지를 사회적 총체성 내에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