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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와 쿤의 통약가능성: 대립적 이해 재고

연구노트

by actant 2022. 4. 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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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을 품은 포퍼? 
: 비판적 합리주의의 정상과학적 함축


1. 들어가며: 비판적으로 합리적인 과학자는 무엇을 믿고 이해하며 수행하는가?

  포퍼는 "과학을 진정한 과학으로 만드는 결정적 요소는 비판적 접근"이며 "과학 지식은 추측과 반박을 통해 성장"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과학정신을 가진 과학자는 다른 과학자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도 비판적이며 성찰적이다. 그래서 포퍼 뿐만 아니라, 러셀도 말했듯이, 과학정신의 핵심은 "비판에 대해 열린 자세"이다. 엄정식(2009)에 따르면, 과학정신은 합리적 방식으로 탐구하고, 비판적 입장과 개방적 자세를 가지며, 보편적 성격과 자율적인 태도를 지닌다. 이른바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는 과학적 지식이나 이론이 지니고 있는 오류를 발견하고 이것을 제거함으로써 인간의 합리성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포퍼는 절대적 진리나 지식의 절대적 원천은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 진리탐구나 지식획득은 과거의 전통, 이성과 관찰, 지적 직관과 상상력 등 종합적 방법에 의거할 뿐이다. 따라서 오류를 발견하고 반박하며 수정함으로써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모든 지식은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이러한 검토의 방법을 통해 이론과 경험의 일치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엄정식, 1995: 47). 다시 말해 과학자는 끊임없는 비판에 직면하고, 실수를 통해서 배우며, 반증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은 시행착오(error)를 통해 진보한다(Chalmers, 2003: 107). 이것이 바로 과학(자)의 합리성이다. "포퍼에 의하면 과학자들이야말로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터득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야 말로 합리적이고 비판적일 뿐 아니라 개방적이며 보편적인,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인간들이라는 것이다"(엄정식, 2009: 14).
  그런데 포퍼는 과학의 진보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즉 "본질적으로 새로운 학설이 기존 학설을 대체" - 마치 "패러다임" 개념을 연상케 하는 - 한다는 것을 "이해한 과학자"는 "자신이 애지중지 키워온 이론에 비판적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Popper 2006[1972], 179).
 
  과학적 진보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학설이 기존 학설을 대체하면서 이루어진다. 새로운 이론은 기존 이론이 풀었던 모든 문제들을 풀 수 있어야하며, 최소한 기존 이론만큼은 잘 풀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웬만한 행성운동 및 거시역학 문제를 해결하며, 최소한 뉴턴의 이론만큼 그리고 어쩌면 뉴턴의 이론보다 더 잘 해결한다. 그런데 급진적인 그 새 이론은 새로운 가정에서 출발하며, 기존의 이론을 초월하여 그것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론을 내린다. 이는 기존의 학설과 새 학설을 구별할 실험들을 고안하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반드시 두 가설 중 적어도 하나를 반증할 수 있는 실험이어야 한다. 사실 그 실험들도 살아남는 가설의 우월성은 입증해줄지 모르나 그 가설이 참인지는 입증하지 못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가설도 곧 또 다른 가설에게 자리를 빼앗길 것이다.
  과학의 진보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해한 과학자는 자신이 애지중지 키워온 이론에 비판적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비평가들의 손에 당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반증하기를 원할 것이다(Popper 2006[1972], 179).(밑줄은 필자)

 다시 말해 과학자들이 비판적 태도를 취하기 위해서는 "과학의 진보"에 대한 어떤 "이해"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적 합리주의라는 과학정신은 각종 오류와 시행착오 등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천되어야 하는 - 실천적 미덕(phronesis)과도 같은 -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노력은 어떻게 가능한가? 합리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주지하다시피, 포퍼는 반증주의를 그 핵심적 방법론으로 주장했다. 하지만 반증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자체로 매우 복잡한 요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이른바 라카토슈의 "세련된 반증주의"는 그러한 고민의 산물이다. 이하에서는 "반증가능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2. 믿음과 행함, 개념과 실제

  우선, 포퍼는 제도라는 사회적 조건을 긍정한다. "비판적 사고의 자유와 진보를 보장해 주는 것은 민주주의 제도뿐"이라는 것이다(Popper, 1966: 223).
 
'과학적 객관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학자 자신의 공평무사함의 산물이 아니라 과학적 방법의 사회적 또는 공공적인 성격의 산물이다. 과학자 개인의 공평무사함은, 설령 그것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또는 제도적으로 짜여 진 과학의 객관성의 원천이 아니라 그 결과이다(Popper, 1966: 220).

그리고 포퍼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아마도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나는 이 '진리에의 근접성(approximation to the truth)' 개념이 과학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앞서 설명한 상반된 가설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과학에서 매우 중요한 것과 관계가 있다. 그런데 비판적 논의는 특정 가치들에 의해 규제를 받는다. 칸트철학에서 말하는 규제적 원리, '규제적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 진실이라는 개념이 비판적 논의의 기준이 되는 것은, 비판적 논의를 행하는 목적이 거짓 이론들을 제거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참 이론의 추구'라는 개념에 따라 움직인다는 얘기가 된다(Popper, 2006: 191).(밑줄은 필자)

  비판적 과학정신은 "참 이론의 추구"라는 "가치들에 의해 규제"를 받는다. 이러한 가치에 대한 규제적 원리 자체를 부정하기는 힘들다. 문제는 "'참 이론의 추구'라는 개념에 따라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참 이론인가 하는 정의(definition)의 문제는 끊임없는 논쟁과 이를 통한 변동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참 이론의 추구'라는 개념"은 "참 이론의 추구가 실제로 나타난 것으로 간주된 사례"에 의해 사후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과학자들의 가치 추구는 진정으로 그것이 참 이론의 추구인지 아닌지의 최소한으로는 동료 과학자들의 판단에, 최대한으로는 과학계 외부의 사회적 평가에 의해 의문에 붙여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과학자는 '참 이론의 추구'라는 "개념"에 따라 움직이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집단적으로 실제 실행됨으로써 참 이론을 추구하는 것으로서 승인된 개념에 따라 움직이는 것인지 모호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퍼는 이러한 "가치"와 "개념"을 강조하는 것이고, 쿤은 이러한 가치와 개념의 "실제(practice)"를 강조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 반증가능성은 이론적 개념인가, 실제인가? 규범적인 것인가, 서술적인 것인가? 

  반증가능성이라는 과학의 구획기준은 너무 쉽게 만족된다(see Chalmers, 2003: 151). 예컨대 점성술, 기독교 문자주의, 프로이트 이론 등도 반증을 허용하는 과학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포퍼는 "반증가능해야 할 뿐만 아니라, 반증되지 않아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구획"에 실패한 귀납주의와 논리실증주의의 '검증' 대신에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을 제시했다. 다시 말해 반증주의(falsificationalism)는 귀납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고안되었다. "귀납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 관찰이 이론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모색"(Chalmers 2003, 85)한 것이다. 관찰언어(관찰과 실험이라는 경험적 테스트)는 이론이 진리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어도 그 이론이 거짓이라는 사실은 밝힐 수가 있다는 것이다(Chalmers 2003, 99). 그래서 포퍼는 '반증'과 '반증가능성'을 구분했다. 반증이 경험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논의라면, 반증가능성은 단순히 경험적 논의가 아니라 논리적인 것이다. 즉 반증가능성은 반증의 논리적 가능성이다(박은진, 2001: 82).

현대의 과학적 접근법을 근대과학 이전의 접근법과 구분해 주는 것이 '반증의 시도'라는 것이다. 모든 해법 시도, 모든 이론은 최대한 엄격하고 철저하게 검증된다. 그런데 엄격한 검토란, 결국 검토 대상의 취약점을 찾아내려는 시도이다. 우리가 과학 이론들을 검증하는 것도 그 이론들의 취약점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이론을 시험하는 것은 그 이론을 반박 혹은 '반증'하려는 시도이다(Popper 2006[1972], 177).

  과학적 법칙이나 이론은 세계가 실제로 어떻게 운행되고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논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주장들을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퍼가 반증가능성이라는 논리적 기준은 과학과 비과학의 차이를 서술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과학이 어떻게 수행되어야하는가를 지시하는 규범적인 것인가? 다른 말로 (논리적) 반증가능성이라는 방법론은 과학의 존재론인가, 아니면 인식론인가? 만약 서술적인 것이라면 반증주의는 과학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해명으로서는 결함이 있다. 과학자들이 언제나 비판적인 것은 아니며, 반드시 이론들에 대한 혹독한 테스트를 추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반면 규범적인 것이라면, 반증주의는 과학에서 널리 알려져 있고 존중되는 이론들(예컨대 다윈의 진화론)을 배제하게 된다(see Hughes, 2000: 135-136). 즉 튼튼하지 못한 이론을 붙잡고 늘어지는 위험, 좋은 이론을 성급하게 포기하는 위험 모두가 존재한다(Hughes, 2000: 135).
  또한 이 문제는 포퍼의 반증주의가 과학자(전형)를 합리성의 화신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이비로 전락시킬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과학이론의 역사적 변화, 세계관의 대체는 반증주의가 그리는 방법론과 일치하지 않는다(Chalmers 2003, 119). 그리고 역사적 근거에 부합하지도 않는다(see Chalmers, 2003: 138-150) 예컨대 반증주의를 충실히 따랐다면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반증주의가 역사적 근거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또한 "실제로"는 반증주의를 충실히 따르지 않았다(장대익, 2011: 91)고 해서 포퍼의 주장을 기각하는 것은 아니다. 포퍼는 반증주의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과학의 발전에는 (과학자들에게) 비판적 합리성(가치 및 방법론)에 대한 믿음과 반증주의라는 태도가 있었다는 것이며 실제 경험적 반증을 말한 것이 아니라, 논리적 반증가능성을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기술적 측면은 논리적 원칙에 따라 논의될 수 있는 반면, 탐구적 측면은 논리적 원칙에 따라서만 논의되기에 충분치 않고 또 논리적 원칙에 언제나 들어맞는 것도 아니다(박은진, 49). 포퍼는 가설들과 이론체계의 성립이라는 기술적 측면보다는 가설들과 이론체계들을 테스트하는 탐구적 측면을 드러내어 이를 통해 '방법론(Methoden-Lehre)'을 정립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반증은 어려우며 시간이 걸리는 문제일 수 있다. 포퍼는 과학자들의 이러한 태도를 인정했고 심지어 이런 노력을 "바람직"하다고까지 했다(see Popper 2006[1972], 177). 


4. 반증(불)가능성의 집단적 성격

  끊임없이 반증하려는 태도, 즉 이론을 반증에 끊임없이 노출시키는 열린 과학정신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결정적 반증 불가능성이 존재한다. "실제적인 테스트 상황의 복잡성"은 실제 과학 이론이 단일 명제가 아니라 보편 명제의 복합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기도 하고, 나아가 실험도구에 이론이 연관되어(보조 가정) 있거나 실험도구를 사용하는 초기 조건들 때문에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어떤 예측이 거짓으로 판명되었다면 일반적으로 과학자는 가설에 포함되어 있는 여러요소들 가운데에서 적어도 어느 하나가 거짓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지 - 이것이 합리적이다 -,  가설 전체를 곧바로 폐기하지는 않는다. 잘못된 것은 테스트 중인 이론일 수도 있고, 초기 조건일 수도 있으며, 부정확한 예측을 하도록 한 초기 조건에 대한 기술들 중의 어느 한 부분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과학자는 잘못된 예측의 원인이 가설(이론)에 있다기보다는 복합적인 테스트 상황에 있을 가능성을 더 많이 고려하게 된다. 결국 이론은 결정적으로 반증되지 않게 된다(Chalmers 2003, 114-116을 보라). 게다가 테스트의 엄격성을 검증하기 어렵다. 포퍼는 이를 인정했다. 엄격성이란 실험 제반 장비의 정교성, 획득된 결과의 정확성과 정밀성, 그리고 테스트의 가설과 다른 이론적 가정을 묶어주는 폭넓은 연계성 등에 의존되기 때문이다(Losee, 1999: 219). 앞서 이러한 복합적인 테스트 상황은 사실상 가설이 테스트 방법을 함축하는 가설들의 집합이라는 말과도 같다. 즉 테스트를 통해 반증해야 할 것은 하나의 가설이 아니라 가설들의 집합 전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가설 전체가 테스트를 받기 때문에 반증 사례가 나와도 그 중 어떤 가설이 정말로 틀렸는지 꼭 집어서 말할 수 없게 된다(장대익, 2011: 93). 
  결정적인 반증이 불가능한 궁극적인 이유는 반증의 기초가 되는 특정한 시공간의 관찰명제(기초명제)는 이론 의존적이며 오류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관찰명제가 이론 의존적이라는 주장은 반증주의에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반증을 하기 위해서는 반증의 기초가 되는 확실한 관찰명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론 의존적인 관찰명제는 관찰언어의 불확실성과 오류가능성(falliblilty), 즉 해석의 문제를 야기한다. 이로 인해 이론의 결정적인 반증은 있을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오류가능성이 있는 관찰명제의 해석의 문제는 또다시 이론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결정적인 반증은 그것이 근거하고 있는 확실한 관찰명제의 확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립할 수 없다(Chalmers 2003, 113). 소위 "콰인-뒤앙 논제" 혹은 관찰에 의한 이론의 '미결정 명제'라고 불리는 "경험적 전체론(empirical holism)"의 문제인 것이다. 쉽게 말해  "경험의 법정에 서는 것은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이론 전체"(장대익, 2011: 94 재인용)이기 때문에 이론이 맞는 가 틀린 가가 관찰명제에 따라 완전히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김경만, 2004: 125). 즉 반증되는 것은 이론의 전체이기 때문에 일부를 적절히 조정해서라도 이론 전체를 살릴 가능성은 늘 생긴다는 것이다. 뉴턴도 반증 사례에 직면했을 때 중심 이론을 포기하지 않고 다른 가설들을 적당히 수정해서 이론 전체를 살렸다(장대익, 2011: 95). 또 관찰을 정당화하는 문제도 단순하고 간단하지가 않다. 예컨대,

갈릴레오의 발견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들이 매우 어리석고 완고한 보수주의자들은 아니었다. 망원경의 사용에 대한 정당화가 나타나게 되었으며, 더 좋은 망원경이 만들어지고 그것의 기능을 설명하는 광학 이론이 발전함에 따라 망원경의 사용에 대한 정당화는 더욱더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Chalmers, 2003: 147. 밑줄은 발제자).

  그렇다면 이러한 관찰명제(기초명제)는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가? 또 과학자는 어떤 때 무자비한 비판을 받아들이고, 어떤 때에 독단주의를 수행해야 하는가? 포퍼에 따르면, "기초 명제는 결단 혹은 합의의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이러한 한에 있어서 기초 진술은 규약이다."(Chalmers 2003, 112 재인용) 포퍼는 반증주의에 대한 '콰인-뒤앙 논제'의 비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다른 가설들은 잘 확립된 배경지식이라 하고 문제가 되는 가설만을 시험해보면 되지 않는가?"(장대익, 2011: 95) 즉 "어떤 것은 참이라 믿고 시작하자"는 것이다(장대익, 2011: 96).  
  이러한 포퍼의 입장은, 차머스에 따르면 "그렇게 주관적인 것인 아니다."(Chalmers 2003, 112) 포퍼는 "개인과 개인의 집단이 내리는 결단의 역할을 강조"(Chalmers 2003, 112)하고 "배경지식에 대한 신뢰를 전제"(김경만, 127)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집단의 합의와 규약에 대한 강조는 반증주의가 끊임없는 반증의 시도를 적절한 경우나 시점에 (잠시나마) 중단해야 함을, 즉 기초명제에 대한 회의를 부분적으로 유보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차머스에 따르면, 배경지식(background theory)은 과학사의 어느 단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잘 확증된 과학이론을 통틀어 일컫는 것으로서 조심스러운 추측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담한 추측이란 이러한 배경 지식에 비추어 보다 "그럴듯하지 않은" 주장을 담은 추측이며(Chalmers 2003, 102), 참신한 예측이란 그 당시의 배경지식이 나타나 있지 않거나, 배경지식이 배제하고 있는 현상을 예측이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Chalmers 2003, 103). 대담한 추측의 확증은 조심스러운 추측들로 구성된 배경지식에 대한 반증이 된다(Chalmers 2003, 104).
  다시 말해 비판적으로 합리적인 과학자는 과학자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배경지식에서 벗어난 "그럴듯하지 않은" 지식을 "대담하게" 제시해야 한다. 여기에서 "대담함"이란 가설적 내용의 크기(size)를 의미한다. 포퍼에 따르면,

내용의 크기는 곧 이론의 '대담성'이다. 가설에서 주장하는 바가 많을수록 그 가설이 거짓으로 판명될 위험도 크다. 우리는 진실을 추구하되 대담하고 모험적인 진실에만 관심을 갖는다(Popper, 2006: 192).  

그런데 이 때 과학자가 "그럴듯하지 않은 주장"을 "대담하게 추측"할 때, "배경지식"의 역할이나 기능은 무엇인가? 즉 과학자는 배경지식을 벗어나는 주장을 생각해 내고 또 제기할 때에 배경지식을 가지고(공유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배경지식이 없이도, 또는 그것에 대한 이해가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결과적으로 비판적으로 합리적인 과학자는 당대에 공유되고 통용되는 "경험적 내용"을 판단할 집단의 "배경지식"을 완전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경험적 내용"의 "대담한 추측"을 생각해 낼 수 없으며 어떤 추측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추측이 집단 내에서 "대담한" 것으로서 "유의미"한 "경험적 명제들의 집합"의 "추측"으로 "유의미"하게 생각되어질 수 없다. "대담하다"는 것은 과학자 개인의 "용감함"과 같은 심리적 의지의 표현이 아니며, "배경지식"과 그것을 공유한 동료 과학자 집단을 무시할 수 있는 "안하무인"의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다시 말해 그저 (무의미한) "추측"은 언제나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이 배경지식에 비추어(견주어) "그렇듯하지 않은" 주장이라는 의미(평가)가 가능하고, 그것을 제기한 과학자 개인이 자신의 행동이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작업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인지하기 위해서는 집단적으로 승인된 "그럴듯한" 배경지식에 대한 선이해가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배경지식은 반드시 그것을 공유하는 어떤 집단의 존재를 전제한다.
 

5. 반증주의의 실천 또는 실제적 반증주의 

  결국 포퍼는 "실제적인 테스트 상황의 복잡성" 및 "경험적 전체론"이라는 치명적 문제를 가진 반증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개인의 결단, 집단의 합의와 규약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포퍼에 의하면, 

객관적 과학의 경험적 토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과학이 절대불변의 토대에 근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과학 이론의 구축물은 늪 위에 세워진다. 과학은 각목 위에 세워진 건물과 같다. 이 각목은 늪 위에서 아래로 박혀져 있지만 어떤 자연적이거나 "주어진" 토대와 맞닿아 있지는 않다. 설혹 우리가 각목을 더 깊게 박지 않는다고 할지라고 그것은 우리가 확고한 토대에 도달했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는 적어도 당분간 그 각목이 구조물을 지지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각목을 더 깊이 박지 않는 것이다(Chalmers 2003, 113 재인용. 밑줄은 발제자).

이론에 관한 모든 검증은 어떤 기초명제 혹은 우리가 받아들이기로 결정한(decide to accept) 명제에서 끝내져야만 한다(김경만, 2004: 131 재인용).

차머스에 따르면, 

언명이 아무리 확고하게 관찰과 실험에 기초하고 있을지라도, 반증주의자는과학적 지식의 진보가 보여주고 있듯이 이론과 관찰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반드시 이론을 포기해야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이론에 대한 결정적인 반증은 관찰에 의해 성취될 수 없다(Chalmers, 2003: 134).

결국 이론에 반하는 증거가 출현한다고 해서 반드시 이론을 폐기할 필요는 없고, 가설이나 이론을 수정하거나 몇몇 보조가설을 더함으로써 이론을 구해낼 수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포퍼는 이러한 조정들이 많을수록 과학적 지위가 하락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한 조정을 하게 될 때에도 반증가능한 함의는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김경만, 2004: 132).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가설을 당연시하고 어떤 가설을 의문에 부치는 지는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물론 과학자들이 항상 자기 이론을 반증하기를 좋아한다는 얘긴 아니다. 과학자는 자신의 이론을 '시도된 해법'으로서 시험대 위에 세운다. 그 이론이 가혹한 검증을 통과할 것으로 기대하고 만들어진 이론이라는 뜻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던 해(解)를 반증당한 뒤 개인적으로 깊은 실망감에 빠진다.
  때로는 반증이 과학자 개인의 목표가 아닌 경우도 있다. 또한 진정한 과학자가 자신이 크게 희망을 건 학설이 반증당하는 것에 맞서 있는 힘을 다해 옹호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는 과학이론 발전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한 노력이 없다면 어떻게 '진짜' 반증과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 반증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과학에서는 어떤 이론이든 진중한 검증의 대상이 될 때마다 찬성과 반대의 두 무리를 이룰 필요가 있다. 아무리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논의를 거친다 해도 논의가 항상 딱 맞아떨어지는 답을 제시해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Popper, 2006: 177-178).(밑줄은 필자)

  포퍼는 명백한 반증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이론을 유지해야(독단주의)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중요한 것은 비판적이든 독단적이든 그러한 입장의 배후에는 상이한 입장의 경쟁적인 혹은 적대적인 "무리"(집단)가 있다는 점이다. 
  포퍼가 비판적 논증으로서의 과학의 전제는 쿤의 "정상과학" 일 수 있다. 샤록과 리드(Sharrock・Read)에 따르면,

쿤이 포퍼에 반대하는 주된 이유는 비판의 역할에 있다. 그는 포퍼가 과학 실제에 대해 비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포퍼 식으로 혁명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나라의 과학은 결코 우리가 만나는 과학과 같을 수 없다. 그것은 기껏해야 자연 과학이 등장하기 전, 모든 사람이 근본적인 것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전(前) 패러다임의 상황과 같다. 더 심하게 말하면, 비판주의라는 포퍼의 생각은 과학을 전패러다임 단계보다 더한 철학과의 세미나와 같다고 여기게 할 수 있다. 포퍼의 한 측면만을 본다면 포퍼의 생각에 반대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포퍼를 너그럽게 대한다면, 그의 말이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즉 포퍼는 꾸준히 끊임없이 지속되는 비판적 논증으로서의 과학이라는 상을 현실적으로는 지지하지 않았고, 또 그럴 수도 없다고 의도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포퍼와 파이어벤트의 주장은 쿤의 정상 과학의 상을 전제한다고 말할 수 있다(쿤의 정상 과학은 그걸 무시하지만)(Sharrock・Read, 2005: 174-175).

  즉 "반증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한 공동체에서 실제로 안정적으로 운용되는 통상의 (정상) 과학에 일종의 안정성 또한 필요하다"(Sharrock・Read, 2005: 187).


6. 맺으며

  과학자들의 비판적 합리성은 "과학의 진보"에 대한 어떤 "가치"와 "이해"를 전제해야만 한다. 그리고 과학의 실제 수행 과정에서는 끊임없이 각종 오류나 변칙사례들, 시행착오가 발생한다. 포퍼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법론으로서 "진리에의 근접성" 개념과 "반증주의"를 제시했다.  
  포퍼와 쿤은 점성술이나 맑스주의, 정신분석학 등이 과학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둘의 견해가 일치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표면적으로는) 일치하지 않는다. 포퍼는 반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지만, 쿤은 퍼즐풀이 정상과학이 없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펴 본 바에 의하면, 과학의 진보에 대한 이해와 결정적 반증의 불가능성은 사실상 과학자 집단이 공유하는 "가치"와 "배경지식"의 존재를 함축하는 것이었다. 과학과 비과학의 구획기준인 반증가능성에는 집단적 요인이 그 속에 숨겨져 있다. 다시 말해 과학과 비과학의 구획기준은 반증가능성이 아니라, 패러다임이 있는 정상과학의 유무에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포퍼의 반증가능성에는 정상과학이라는 조건이 함축되어 있다. 그리고 사실상 정상과학에서의 과학자들의 과학적 활동도 흔히 오해되는 "개인적 성향의 표출이나 생각 없이 규범에 순응하는 활동"이 아니고, "전통을 관습적으로 그저 따르는 것"도 아니다(Sharrock・Read, 2005: 169). 따라서 반증가능성과 패러다임은 완전히 모순적이고 배타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상호 의존하는 관계일 수 있다. 샤록과 리드에 따르면 포퍼와 쿤이 서로가 "불일치의 범위를 가능한 과장"하고 있으나 사실상 "실질적인 차이가 없"으며, 서로가 그 점 또한 "잘 알고 있다"(Sharrock・Read, 2005: 175). 과학에 대해서 포퍼는 비현실적으로 비판적이라고 주장하고, 쿤은 비현실적으로 독단적이며 권위적이라는 식으로 둘 다를 극단적인 입장이 아니라 관대하게 독해할 수 있다면, 사실상 이 양자 간에는 "차이가 있을 필요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Sharrock・Read, 2005: 179).
  포퍼에 대한 전형적인 오해는 이러하다. "포퍼처럼 과학의 역사를 인간의 투명한 이성, 혹은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사유의 전개과정이라고 이해한 순진한 철학자도 있었다"

(강신준, http://www.artnstudy.com/keri/lecture/philosophy/sjooKang06/include/lec_intro01.asp?lessonPart=philosophy&lessonidx=sjooKang06&lessonName=%C3%B6%C7%D0%20vs%20%C3%B6%C7%D0%20-%20%C7%F6%B4%EB%BB%E7%C8%B8%B8%A6%20%B9%D9%B6%F3%BA%B8%B4%C2%20%C3%B6%C7%D0%C0%DA%B5%E9%C0%C7%20%BD%C3%BC%B1&lessonTeacherName=%B0%AD%BD%C5%C1%D6&idxNo=)

 

  하지만 포퍼는 과학의 "의식적 논리"에 일차적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쿤의 비난과는 달리, 포퍼는 과학의 현실(reallty) 혹은 실제(practice)를 (쿤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잘 이해하고 있었다. 포퍼의 견해는 과학의 논리에 대한 설명으로서조차도 이상화된 것으로, 과학자들이 가설들을 채택하거나 기각하기 위해 가질 수 있는 엄격한 논리적인 이유 이외의 다른 것들에는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Hughes, 2000: 136). 그 논리란 과학이 (지금까지) 성공적이라면, 그 성공적인 과학의 "의식적"이고 "철학적"인 조건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의 논지는 "의식적인 비판 태도는 제거 과정에서, 그리고 비판과 반증 시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 그러나 의식적인 반증 노력을 비롯한 비판적 접근이 과학을 낳고 과학적 방법론의 대세를 이루는 반면 반증을 무조건 피하려는 독단적 태도는 근대 이전 과학의 특징이라는 것"이다(Popper, 2006: 178). 그는 엄격히 과학적인 기준 이외의 많은 이유들 - 개인적 선호, 경력 승진, 종교적 확신 등 - 은 과학의 사회사의 뿌리 깊은 특징일지라도 그것이 과학의 논리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Hughes, 2000: 135). 다시 말해 포퍼는 모든 과학이 어떻게 수행되는가를 묘사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식의 성장에 기여하는 성공적인 과학 - 스스로 반증의 위험을 무릅쓰는 과학 - 에 대해서만 서술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강조했다(Hughes, 2000: 136). 포퍼가 반증주의를 통해 그리는 비판적 합리주의라는 과학 이미지는 과학실천에 대한 역사주의적이고 심리학적인 묘사(쿤)가 아니라, 과학(사)에 대한 '합리적 재구성'인 것이다. 

 

추가 보완 

*반즈: 포퍼의 도덕 규범적 인식론 비판. 반면 쿤은 경험에서 규범적 함의 도출

*로티

*차머스: 쿤을 전기(상대주의, 패러다임 간 통약불가능)/후기(반상대주의, 통약가능)로 구분하고 후자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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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론: 푸코의 에피스테메와 쿤의 패러다임 개념의 유사성(바슐라르와 캉키엠, 메리 헤시, 플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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